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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2019 QT - 하나님의 안식의 초대

공돌이 2019.10.19 09:22 조회 수 : 13

본문: 레 23: 1-8

 

오늘 본문중에 내 마음에 새겨진 말씀은 3절이다. 

 

"...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

 

오늘 본문에는 절기들에 앞서 안식일을 지킬 것에 대해 먼저 말씀하셨다.  절기들은 일년에 한번 오는 것이지만 안식일은 매주마다 돌아오기에 어쩌면 우리의 인식 속에 형식처럼 여겨질 때가 많은 것 같다.  3절에 나와 있는 '안식 (솨바트)' 히브리어 원어의 뜻에는 '쉬다' '끝내다' '축하한다' 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성경에 '안식'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기록된 곳은 창2:2 이다.  하나님이 육일 동안 천지 창조를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오래 전에 창세기 2장을 읽고 아니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왜 쉬셔야만 했을까? 쉬셨다는 의미가 뭘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  그리고 그 답을 창2:3절에서 어렴풋이 찾을 수 있었다.  창2:3절에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라고 기록했다.  결국 일곱째 날이라는 단어 안에 그 동안에 창조하신 천지 만물이 다 들어 있어서 그들을 하나님의 안식에 초대 하신 것이라는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보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육신의 쉼이 아니고 하나님의 쉼 안에 더불어 안식 했던 모든 창조물, 그들은 아마도 하나님으로 부터 흘러 나오는 참 안식 속에서 창조주의 뜻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았을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에덴 동산을 거닐던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을 때 가장 먼저 깨어진 것이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곧 관계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안식에서 추방된 것이 아니라 천지 만물의 안식이 모두 깨어져 버렸다.  마치 잘 맞추어져 맞물고 있던 정교한 시계의 톱니 바퀴들이 한 순간의 타이밍을 놓쳐서 모두 뒤 틀어져 버린 것과 같이.  그로부터 약 2600여년이 지난 후 출애굽 때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다시 안식일에 관해 규례를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여 보내시기 전에 다시 하나님의 안식에 거하라는 절대 명령이었다.  그만큼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안식에 거하는 것은 필수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4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잡으려고 세상에서 허우적거릴 때 하나님은 계속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마음을 두라고 거듭 말씀하신다.

 

오늘날 우리 크리스천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 말 그대로, 'Lord's Day' 를 한 주의 첫날로 정하고 교회에 모여 경배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린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우리가 일주일의 삶 속에서 얻지 못했던 쉼을 얻기를 원한다.  허나 내가 직면한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어떻게 안식하고 있나?  몇 일 동안 이것을 두고 씨름을 했다.  나는 솔직히 주일 교회에 와서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 보다 어쩌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 간다.  그리고 어떤 때는 내 마음에 불만으로 가득 차서 교회 왔다가 지쳐 집으로 갈 때가 종종 있다.  이것은 우리 프라미스 공동체뿐만이 아니고 오늘날 모든 교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해 보면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육체의 노동이 따르지 않을 수는 없다.  교회도 절대 예외는 아니므로 누군가는 교회 공동체의 필요를 채워야 한다.  예를 들면;

  • 예배를 위해서 찬양팀은 각자의 시간을 바쳐 연습한다
  • 누군가는 주말에 교회 청소도 해야 한다
  • 주일 간사/교사도 맡아야 하고
  • 고장나면 고쳐야하고
  • 주방 일도 감수 해야 한다

그 외에도 참 많은 일들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말없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  이것은 초대 교회 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솔직히 머리가 복잡하고 아프다.  결국 육체의 쉼이 없는 것에 대한 불평이기도 하고 또 뭇 사람들을 보며 '나는 하는데 너는?' 이라고 마음의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그러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안식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연 하나님이 초대하신 안식이 육신의 쉼을 위해서 일까? 라는 질문에 내 마음 안에서 확실히 '아니다' 라는 답이 튀어 나왔다.  그렇다면 교회와서 몸의 피곤 때문에 예배를 예배로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못 느낀다면 그것은 어째면 내 영이 하나님 안에서 바른 안식을 취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쇠퇴한 영 밑에 건강한 혼과 육이 존재 할 수 없듯 말이다.  결국 이것은 교회의 문제이기 전에 내 개인의 문제고 숙제다.  하나님의 안식에 거하는 자는 비록 몸이 피곤하고 때론 마음 조차 흔들려도 영은 밝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안식을 누리는 자가 하나님이 주신 가치관을 바로 알고 삶으로 나타내 보일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선포 했다.  앎이 말에 그치면 아무소용이 없다.  그래서 내 몸이 피곤하고 무거울 때 마음에 쓴 뿌리가 올라 오려고 할 때 다시 한번 그 능력 주시는 하나님의 안식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쉼의 자리에 들어가려 애써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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