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SCROLL TO TOP

오늘 본문중에 내 마음에 새겨진 말씀은 25절이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

 

BC 7세기 로마제국은 이미 콘크리트 사용법을 개발해서 로마 시로부터 시작해서 약 5만 마일의 도로들을 깔았다고 한다.  원래 로마 대로는 세계정복을 이루려는 로마군단이 병사와 군속 물자를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해 건설한 도로였으며 이 대로는 자연스럽게 로마가 경제적으로 번영하는데 크게 사용되었고 교역의 중심지인 로마의 위상을 굳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는 말이 나왔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들도 이 도로들이 지나가는 선상에 있었다고 한다.  로마제국 당시 두아디라 위에 위치한 버가모는 소아시아의 수도였고 그곳을 점령하려면 반듯이 두아디라를 거쳐야 했기에 두아디라는 일곱 도시들 중 가장 작은 도시지만 지형적으로 중요한 군사적 요충 도시였다고 한다. 그래서 침략을 많이 받았고 살아 남기 위해 그들만의 특수성을 가지려 했고 그들이 개발한 것이 수공업이었다.  특별히 옷감과 염색 기술이 탁월했고 그 옷감 산업을 토대로 가죽기술, 장식 수공, 그리고 그 작업들에 필요한 공구들이 개발되며 그들의 삶을 보장하는 많은 산업 조합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부유한 삶을 누렸고 사도행전을 보면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을 만난 자주 옷감 장사 루디아도 이곳 출신이었다. 그런데 삶의 부유함, 이것이 항상 문제의 시작이다.  많은 산업 조합들이 만들어지면서 각자의 신들을 숭배하는 신전들도 같이 번성하게 되고 우상 숭배와 음행이 밥 먹듯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삶의 norm 이 되어버렸고 그런 사회 가운데 있던 두아디라 교회가 외부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 변질된 이교도의 사상이 침투해 들어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있던 두아디라 성도들에게 오늘 본문의 편지가 주어졌다.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사랑, 믿음, 섬김, 인내 그리고 첫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와는 달리 나중 행위가 처음 보다 많음을 칭찬하셨다.  참 대단한 칭찬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프라미스 교회도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허나 이런 믿음이 성숙한 교회 안에도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했고 그 사상을 따르는 무리가 있었다.  두아디라의 이세벨은 열왕기상 16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8대 왕 아합이 왕비로 맞은  두로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매우 흡사하다.  '임마누엘' 의 뜻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이듯 '엣 바알'은 '바알이 함께 함' 이라는 뜻이라 한다.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몰고 이스라엘로 와서 하나님의 선지자 들을 죽이고 온 백성을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본문의 이세벨도 두아디라 교회 밖에 있던 자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죄로 이끈 자이다.  어떻게 두아디라 교회는 이런 자를 교회의 리더로 세우고 따르게 되었을까?  자신들이 변질되고 있음을 감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  결국 죄를 하나님의 말씀 밖에서 세상의 논리로 해석하며 죄의 기준이 불투명 해졌을 때 우리도 이렇게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오늘날 이세벨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내 안에 있는 나의 죄성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인이 아벨을 쳐죽이기 전에 하나님이 분명히 가인에게 말씀 하셨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우리는 순간 순간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죄의 욕구를 다스려야 할 책임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오죽했으면 사도 바울 조차도 로마서 7장에서 자기 자신을 이렇게 묘사 했을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그 당시 로마 고문 가운데 죄수를 죽은 사람과 함께 꽁꽁 묶어 두는 고문이 있었다고 한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모습을 자기 자신에 비교한 것이다.  참 공감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주님은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하신다.  헬라어 원어는 권면이 아니라 명령형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좌로나 우로나 요동치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변질되지 않은 삶을 살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어느 때는 사탄이 2 가지 양면 공격을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 이세벨의 영성으로 믿음을 저버리게 하는 것
  • 감당 할 수 없는 엄격한 율법으로 낙심케 하는 것

주님이 나의 모든 죄를 사하셨기에 주 안에서 자유함을 누려야겠고 그 자유함이 나의 삶을 죄 중에 빠지게 못하도록 말씀의 필터를 나의 마음과 생각에 부착 시켜서 세상의 공해로부터 정화 시키려 노력해보련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Q.T 가이드 디딤돌 2017.06.01 872
공지 Q.T란 무엇인가? 디딤돌 2017.06.01 237
» 11/5/2019 QT - 계시록의 4번째 교회: 두아디라 공돌이 2019.11.11 13
159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책망, 계 3:14-22 박상희 2019.11.08 10
158 요한계시록의 서론, 계 1:1-20 박상희 2019.11.03 15
157 레위기를 통해 받은 은혜 박상희 2019.10.31 10
156 10/21/2019 QT - 절기의 마침표: 희년 공돌이 2019.10.26 12
155 율례와 계명을 지키는 자의 복, 레 26:1-13 박상희 2019.10.25 7
154 순금등대와 진설병의 비밀, 레 24:1-9 박상희 2019.10.20 13
153 10/15/2019 QT - 하나님의 안식의 초대 [1] 공돌이 2019.10.19 19
152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거룩, 레 21:1-24 박상희 2019.10.12 21
151 가증한 풍속을 따르지 말라, 레 18:1-30 [1] 박상희 2019.10.06 23
150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의 복, 시 125편 박상희 2019.09.29 12
149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시 122편 박상희 2019.09.27 19
148 값지고 강한힘을 가진 말씀 (시119:145-175) [1] 보라 2019.09.25 81
147 내가 새벽녁에 눈을 떳나이다, 시 119:145-176 박상희 2019.09.25 8
146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니이다, 시 119: 113-144 박상희 2019.09.22 14
145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때(시119:121-136) [2] 보라 2019.09.21 18
144 주의 말씀은 내발에 등(시119:105-120) [1] 보라 2019.09.20 19
143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 시 119:49-112 박상희 2019.09.20 11
142 내 자아와 말씀의 싸움 [2] Praise37 2019.09.19 21
141 주의 말씀대로 세워진 자의 고백, 시 119:1-40 박상희 2019.09.1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