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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수님 공생애 3년 기간에 첫 번째 유월절을 맞아 갈릴리 지역에서 유월절 명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예루살렘 성전에 방문하여 벌어진 장면이다.

 

당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에는 유대를 떠나 있었던 유대인들도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것이 선대로 내려오는 신앙의 유산들 이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전 이스라엘에 사는 사람들 뿐 만 아니라 유럽과 터키와 아프라카와 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들어 유월절 기간에는 사람들이 넘쳐난 기간이었다.

 

당시 유월절기간에 예루살렘에 올 때 유대인들은 집에서 자신들이 키운 동물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고 성전으로 가져온다. 그러나 성전의 제사장들은 가져온 제물들을 검사하고 흠 을 잡아서 제물로 인정을 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인정하는 제물을 사서 가져오라하여 성전에서 제물을 파는 행위가 벌어진다. 그 가격이 당시 성전 밖에 나가 구할 수 있는 동물의 가격보다 훨씬 높은 몇 배의 가격을 받아 성전을 운영하는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이 착복을 하여 그들의 부를 쌓아가며 또한 로마 황실에 상납금으로 사용을 한다.

 

또한 당시 로마시대때 사용한 동전들은 다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기에 성전에서는 이방인의 얼굴이 있는 돈을 받을 수 없다 하여 성전에서 쓰는 세겔이라는 화폐만 사용을 하게 하여 모든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환전을 해야만 했었다. 당시 환전을 할 때 엄청난 환차액을 받아 그것으로도 엄청난 이익을 보는 수단으로 삼아 성전을 둘러싼 종교지도자들은 매일 그들의 재산을 성전을 통해 종교를 빙자한 재벌들로 살아가는 수단으로 성전을 이용을 하였다.

 

이렇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본질을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아있어 하나님 앞에 죄를 사함받는 제사를 드리는 본질이 사라졎다. 예루살렘 성전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책임을 다했다는 위안을 주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이런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을 본 예수님께서 이런 사실앞에 예수님은 그만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사랑과 위로와 치료의 모습으로 많이 묘사가 되어 이미지 자체가 부드러움의 모습을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 등장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성전에서 내쫒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

 

예수님은 사랑의 이미지로 오늘 성전에 나타나시지 않으신다. 엄하신 모습으로 사람들을 채찍으로 때리시고 장사판을 다 엎으시는 모습이다. 성전에 있는 지도자들의 눈으로 비췬 예수님의 모습은 한 마디로 요즘 말로하면 뒤집어 엎으시는 불량자의 모습이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당시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본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서 벌어지는 이런 장사판에 다들 문제가 있고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어떻게 이것을 변화를 시킬 용기와 힘이 없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알고는 있지만 그냥 현실에 주저 앉아 버릴때 지금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하신 오늘 장면속에서 많은 유대인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 저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누구인가 ?? " 

 

사실 4 복음서는 이 질문을 하면서 출발을 한다. 당시 로마정부에 정치적으로 결탁하여 모든 기득권을 누린 사람들이 종교지도자들 이었다. 대제사장, 제사장, 사두개인, 산헤드린공회원, 이런 모든 자들이 예수님이 성전에 나타나셔서 하신 일을 보고 들으면서 한 질문이 이 질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길래 성전을 " 내 아버지의 집 " 으로 말하는가??? 그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는 것인가 ??

 

예수님은 태어나시는 순간 부터 공생애의 첫 유월절기간에 예루살렘 성전에 오실때 까지 누구에게 관심이 대상이 될 수 가 없는 출신과 집안과 직업을 가지고 계셨다. 당시 기득권층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집 나가서 허접한 사람들과 다니는 지금으로 말하면 Homeless People 로 보이는 사람이었기에 세상적으로 이 질문에 답이 절대로 나오지 않았다.

 

오늘 본문에서 시작한 예루살렘 성전청결 사건으로 시작을 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장면은 나중에 사도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진 나사렛 출신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 죽었다는 소식과 그가 죽은지 3일 만에 살아났다는 사실을 듣고 믿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고 십자가의 죽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복음을 듣고 믿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인 교회가 탄생하게 되는 발판이 된다.

 

본질을 잃어버린 성전에 예수님은 헐어버리라고 하시며 다시 내가 성전을 세우시겠다고 하신다. 당시 46년 동안 성전을 짖고 있었던 성전을 허물고 다시 짖겠다는 예수남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제자들도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살아나신 후에 이 말씀을 믿었다고 할 정도로 당시에 이 말씀은 정말 아무도 이해 할 수 없었던 말씀이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해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셨다.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고 그 성전에 들어오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을 받아 구원 받은 자로 세워져야 하는 것이 성전이 존재 하는 본질이다. 예루살렘에만 존재했던 당시의 성전이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사도바울은 성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말씀을 하신다.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내 안에 예수의 영이 머무는 내가 성전이라는 성전의 개념을 새로운 각도로 말씀을 하신다. 오늘 에수님께서 성전에서 보이신 행동속에 본질을 떠난 성전은 예수님께 인정을 못 받고 내쳐진다는 교훈의 말씀이다. 나는 언젠가 주님 앞에 서서 내가 이 땅에서 살아온 것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한다. 그 평가의 기준이 세상적인 관점과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예수님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 알아야한다.

 

나는 살아서 스스로 걸어다니는 하나님의 성전이고 교회이다. 말씀을 통해 내 안의 본질을 회복하여 유형교회인 출석하는 남가주 프라미스교회 뿐만 아니라 무형교회인 내 스스로가 하나님 말씀안에서 본질을 깨닫고 주님의 마음 속에 있는 그 관심과 통하는 자로 세워지도록 말씀앞에서 나를 돌아보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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