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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가운데는 제자 12명을 비롯해 수 많은 무리들이 따랐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감시를 하였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첫 번째 유월절때 예루살렘을 방문을 하여 성전에 들어가 성전을 장사판으로 만든 모든 것 들을 집어 던지며 "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 라고 말씀을 하시며 당시 예루살렘 성전을 둘러싼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며 공생애의 서막을 올렸기에 당시 성전을 중심으로 한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사두개인과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있는 산헤드린공회가 예수님을 주목을 하기 시작하여 예루살렘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200만 가량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한 가지 주제로 예수님이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 예수 그는 누구인가???? "

 

그런 예수님을 감시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부터 파견되어 따라 다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여 예수님과 설전을 벌인다. 그 주제는 " 왜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가? " 에 대한 설전을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당시 장로들의 전통을 많은 유대인들의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보다 더 중요하게 지키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이런 것들을 지적하는 말씀이시다.

 

"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출애굽을 시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과 모압평지에서 가나안땅을 향해 들어가는 이스라엘을 향해 다시 율법을 강해하는 신명기의 말씀을 모세5경 즉 토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으로 받고 그 말씀을 지키며 살다가 어느 순간 부터 그 울법에 대한 해석과 주석을 담고 있는 랍비들의 해석들을 모은 구전 토라인 미쉬나 같은 다른 율법들이 등장을 한다.

 

또한 미쉬나에 포함된 율법의 해석을 위한 해석인 미드라쉬, 그런 전통을 포괄적으로 집대성한 탈무드 같은 것들을 만들어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 모세5경을 중심으로 한 율법을 인간들의 재 해석과 조항들을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 보다 더 숭배하고 따르는 것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 장로들의 전통 " 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모순을 지적을 한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손을 씻는 문제는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논쟁거리의 Main 주제가 아니다.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예수님께서 몸소 행동으로 보이신 것이 "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신 사건 " 이다. 당시 안식일은 장로들의 전통에 일하지 말라는 규정에 더 자세한 세부세칙을 담고 있었다. 거리상으로도 얼마 만큼만 걸어서 가야 하고 어떤 것은 여기 까지는 허용하고 그 이상은 일 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율법을 어기는 것으로 규정하는 이런 조항들을 담고 있는 것 들이 장로들의 전통인데 이것들을 향해 ' 일 하지 말라는 안식일에 그들 앞에서 두번째 유월절때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 " 으로 인해 이때부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모의하기 시작 하였다고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에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사건이 당시의 큰 사건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갈릴리 지역의 회당에서 예루살렘 한 복 판에서 병자를 고치시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손을 씻는 문제와 고르반으로 말을 하여 " 네 부모를 공경하라 "는 십계명에 기록될 정도의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들이 세운 편법으로 회피하려는 것을 다 포함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본질적인 메세지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하신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다. 예수의 피로 모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관심은 " 생명 " 에 있으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들이 병 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안식일의 참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규정과 제약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생명이 죽어가게 버려두는 인간들의 죄성으로 만들어진 전통과 유전을 깨뜨리고 계신 것이다.

 

사도바울은 "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애 행 한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 하며 자신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을 하였는데 그런 사울이 바울이 되어 변화된 고백을 이렇게 한다.

 

"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 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 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

 

믿음의 년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내 안에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모습이 너무나 많이 있음을 내 자신을 통해 본다.

너무나 익숙한 교회생활, 주일 설교와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들을 들으면서 나는 예수님의 마음에 꽂히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였다.

 

주님이 나에게 가지시는 관심은 무엇일까? 나를 향한 주님의 마음은 무엇일까?

" 내 영혼이 주님과 깊어지는 것 " 에 관심과 마음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가 몇해가 안된다. 믿음생활 한지가 40여년이 되어가는 시점에도 나는 주님의 마음과 깊어지질 못했었다. 교회생활도 사람들을 의식하며 보여주는 Show Window  신앙생활에 젖어서 교회생활을 하며 익숙함에 빠져든 나의 교회생활에 직분도 받고 많은 관심을 받으며 한 신앙생활에 "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이 사라진 " 속빈강정 같은 신앙생활에 있었던 나의 모습에 어느날 각성이 된 본문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었다.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 " 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책망이 나에게 들려왔었다. 그런 본질을 찿아 변화된 믿음생활에 대표적인 예가 말씀의 기준과 적용이 남 들을 향해 가는 모습에서 나로 향해 가는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다. 말씀 앞에서 내 모습에 눈물 흘리고 회개하며 옷 을 찢는 통회하고 자복하는 내 모습을 주님은 보기를 원하신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세워지기 까지 내 믿음생활에서 거의 35년의 세월이 흘러 본질의 자리에 겨우 걸터 앉게 하셨다.

 

오늘도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처럼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말씀으로 다시한번 나의 마음과 생각들을 정리하게 하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본질을 놓치지 않고 그 말씀에 반응하며 " 말 로가 아니라 삶 으로 " 살아가며 " 말씀이 삶이 되어 " 매일 주님과 깊어지는 내 모습이 되길 소원하며 나를 깊히 돌아보게 하신다.....